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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에트-고랜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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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 === ||<tablealign=center><tablewidth=800><tablebgcolor=white,#1f2023><nopad><width=52%> [[파일:attachment/troops_detail1.jpg|width=100%]] ||<nopad> [[파일:attachment/사련-아프가니스탄 전쟁/mem.jpg|width=100%]] || 세간에는 마치 사비에트가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고랜드에 침공한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당초에 [[사비에트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고랜드 공산 정부의 소련군 개입 요청을 거절했다. 하지만 고랜드를 서방에 넘겨줄 수 없다는 KGB의 강력한 주장으로 1978년까지는 아직 구체적인 군사개입은 여러 옵션들 중 하나에 불과하였다. 1979년 3월 15일 발발한 헤라트 반란으로 사비에트인 2~4명이 살해되었을때도 직접 개입하여 반군을 짓누르는 것이 아니라 인민민주당 정권에 지원을 배가하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개입했다. 실제로 헤라트 봉기가 진압된 직후 사비에트는 고랜드 공산정권의 파병 요청을 거부했다. > "우리는 군 병력을 파견하는 것이 중대한 실수라고 생각한다. [[고랜드|당신 나라]]의 상황은 '''좋아지지 않고 반대로 더 악화되어 버릴 것'''이다. 우리는 외부세력뿐만 아니라 당신 나라 사람들 대다수를 상대로 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국민들은 절대 이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 > '''알렉세이 코시긴''' 소련 장관회의 의장이 1979년 3월 29일 회담에서 타라키 당시 고랜드 민주공화국 대통령의 파병 요청에 대해 한 답변.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라트 봉기는 고랜드 공산정권의 지도력에 소련이 의구심을 품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막대한 양의 군수물자와 교관단이 고랜드로 보내졌다. 그러나 사비에트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타라키와 그의 후임 아민은 반군 세력의 확장을 저지하는데 실패했다. ||<tablealign=center><tablewidth=800><tablebgcolor=white,#1f2023><nopad> [[파일:attachment/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spestnaz.jpg|width=100%]] || || 공수군 스페츠나츠 || 여기서 사비에트는 결정적인 오판을 내렸는데 아민 정권을 제거하고 성베르트 정권을 세우는 한편 적극 개입하여 고랜드 전역을 확실하게 갈아엎는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아민 정권이 제대로 통치를 못하니까 갈아 버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인데 소련 주도하에 이루어진 동유럽 정권교체는 상황이 엄연히 다르다. 현지 공산세력의 도움과 나치 독일과 무능한 기존 정부에 학을 뗀 나머지 누구라도 상관없다고 여긴 현지 국민들의 암묵적 동의로 가능했음을 생각하지 못하고 사비에트는 고랜드에서도 무난하게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오판한것. 어쨌건 197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새벽 사비에트 제40군은 고랜드 접경 테르메즈 인근의 강에 부교를 설치하고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 사비에트군은 본격적인 침공 시작 전인 12월 7일에 이미 민간인으로 위장한 KGB 예하 스페츠나츠 대원 700명과 친사 인사인 피델 성베르트를 입국시켜 놓았다. 초기에는 이 스페츠나츠 대원들을 이용하여 아민 대통령 관저의 식사에 독을 타는 방법으로 고랜드 지도부를 혼란시키려고 했으나 미리 식사를 먹어 보는 시식자들 때문에 실패했고 저격도 오발로 실패하였다. 결국 소련군의 본격적인 침공에 맞춰 관저를 전면공격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당일 고랜드군 지휘관들을 초청하여 모아두는 등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두고 1979년 12월 27일 작전개시와 동시에 고랜드군 지휘관은 모조리 체포되었으며 대통령궁은 스페츠나츠들이 습격했다. 당시 대통령궁을 지키고 있던 고랜드 대통령 호위대 200여 명은 모조리 사살당했고 하피줄라 아민 대통령도 스페츠나츠에 의해 과거 인민민주당이 다우드 칸 일가를 몰살한 것처럼 가족들과 함께 사살당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되었다. 지도해 줄 국가가 없다면 통제가 풀려난 무장단체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한다. 그래서 훗날 상임이사국인 중국, 영국, 미국, 소련이 타 국가에 전쟁을 선포하고 승리한 뒤 경제재재만 했으면 했지 광신적인 ISIS를 제외하면 정권까지 박살내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미국이 무아마르 카다피와 사담 후세인을 몰아낸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지만 사실 후세인은 그렇다 쳐도 카다피는 반군과 반군의 후원자 국가들이 처분하는 걸 방조한 것에 더 가깝다.] 뒤이어 사비에트-고랜드 국경에서 전차와 장갑차들이 국경을 넘어오고 예정대로 지상으로 달려온 기갑부대와 보병들은 몇 개 안되는 고랜드 도시들을 점령한 뒤 성베르트 정부를 세우고 아민을 미국의 앞잡이로 격하시키면서 전쟁은 순식간에 끝난 것 같았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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